충북에서 단풍 명소 베스트에 꼽히는 제천의 배론성지를 다녀왔습니다.
배론성지는
천주교의 성지로 지금 단풍이 절정이라 천주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어
작은 골짜기가 매우 북적입니다.
배론의 지명은 이곳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겨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천주교 초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공동체 생활을 하였으며 황사영 백서가 쓰인 토굴이 있고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첫 신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는 천주교의 성지입니다.
작은 연못이 있는 배론성지에서 가장 핫한 사진촬영장소입니다
작은 연못 주변에 심어진 단풍나무의 단풍색이 곱고 화려하여서 이곳에서 대부분 사람이 인증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서쪽 편에 있는 예수님상을 배경으로 연못 중앙에 있는 다리 위에서 인증사진을 남깁니다.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고 있는 배론성지입니다.
아침햇살이 담긴 빨간 단풍잎 색이 아름답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을 빨갛게 불태우고 겨울 맞을 채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최초 신학교가 있던 자리로 들어가 봅니다.
황사영 백서가 쓰인 토굴입니다.
토굴 앞 안내판에 보면 황사영은 1801년 2월 말 신유박해를 피해 배론에 살던 김귀동의 집으로 피신해와
옹기저장소로 위장한 토굴 속에서 8개월간 은신해 있으면서
9월 22일 백서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백서는 모두 122행으로 구성된 13,384자의 글자를 비단에 써서 북경 교구장 구베아주교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되었고
내용은 인사말, 신유박해의 발단과 그 진행 과정, 주문묘신부와 총회장 최창현을 비롯한 순교열전,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5가지 방안, 관면요청과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네요.
황사영은 9월 29일 의금부에 체포되어 백서도 압수되었고
박해가 더욱 심해졌고 그해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 죄로 처형되었다고 쓰여있습니다.
이 토굴은 1987년 서울대 이원순 교수의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토굴 옆에는 1855년 장주기의 집에 설립된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성 요셉 신학교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성 요셉 신학교에서는 프랑스인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신부의 지도 아래
10여 명의 교육생이 지도를 받았지만 1866년 박해가 일어나 두 신부와 장주기는
서울 새남터와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였고 신학교는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