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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배울 수 있는 공주의 용문서원 방문 후 소개드립니다.

국내 가볼만한 여행코스

by riho❤️ 2022. 12. 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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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유태 유허지 공주 용문서원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은 이유태 유허지라는 안내문을 보고 당황할 수 있습니다. 용문서원을 방문했는데, 잘못 온 걸까? 아닙니다. 두 개의 문화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용문서원도 시야에 들어옵니다. 

1663년 이유태가 중동으로 이주한 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사송 서재와 함께 세원 시립교육기관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곳은, 수백 명의 문인들이 오고 갔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재미나게도 용문서원 입구엔 이유태의 이야기가 안내되어 있는데, 이유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물 소개이기 때문입니다. 

용문서원의 최초 이름은 "용문서재"입니다. 현재의 용문서원은 197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고택과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사우 6칸, 신문 1칸, 좌우 협문 각 1칸, 장서각 6칸, 동재 6칸, 유물 8칸 등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는 건축들이 다수 조성되어 있습니다. 

용문서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고택이 있고, 오른쪽에는 용문서원의 전통을 잇기 위해 부설로 세운 공주전통문화교육원이 있습니다. 이유태의 문중인 경주 이씨 문헌공파 종가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서원으로 조상의 흔적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유태 선생이 거닐었던 흔적을 찾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사계 선생의 고제3현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중기 대표적인 경세 사상가로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유계와 더불어 충청 5현으로 일컬어지는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유학자입니다. 

초려 선생의 본관은 경주로 금산에서 태어나 일찍이 고청 서기의 문인인 민재문에게 수학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사계 김장생과 신득재 김집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경진하였습니다. 

초려 선생은 스승 김집의 추천으로 관직에 임명됐지만 높은 직책을 포기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에는 선비가 가히 출사할 의가 없어졌다고 하며 모든 벼슬을 사양했습니다. 조선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것을 가리킨 것으로 이유태의 관직에 대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용문서원 내삼문 안에 위치하고 있는 사우인 명덕사는 문하생들이 거주하면서 공부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려 당시의 건축물은 항일운동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면서 토지조사에 불응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후손들은 이를 안타까이 여겨 용문서재가 있던 자리에 용문서원을 정비 복원하였습니다. 

서원은 대체로 세속에서 벗어나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곳으로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절터 또는 퇴락한 사찰이 있었던 곳, 배향하는 선현의 연고지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서원에 모신 선현이 살아 있을 때 세운 서당이 발전하여 서원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서원의 규모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공주 용문서원은 선비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공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서원에서 교육의 중요함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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