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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알기쉽게 정리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56회 심화 문제와 해설 정리 (1) + 암기법

정답>

'이것은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발굴된 이른 민무늬 토기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 토기의 출토로 우리나라의 () 시대가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산리 유적에서는 화살촉, 갈돌, 갈판 등의 석기도 나왔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신석기 시대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어 식량을 생산하였다.

오답 해설>

고인돌, 돌널무덤(석관묘) 등을 만든 것은 청동기 시대의 일이다.

거푸집을 이용하여 청동검을 제작한 것 역시 청동기 시대의 일이다.

​④ 주로 동굴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일이다.

쟁기,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를 써서 농사를 지은 것은 초기 철기 시대의 일이다. 참고로 이때 철제 무기도 만들어 사용하였다(이로써 청동기는 의식용 도구로만 사용).

정답>

'() 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 지내어 대를 이을 자식을 구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더니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를 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니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었다. ······ 이름을 금와라 하고,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여기서 해부루는 고구려의 동명성왕 설화에 등장하는 ()부여의 (전설적인) [시조]이고, (양자인) 금와는 해부루를 이어 ()부여의 왕이 된 인물이다(재위 기원전 60-기원전 24). 또 금와왕이 고구려의 시조 주몽(재위 기원전 37-기원전 19)의 어머니 유화(柳花)를 거두었고, 주몽도 키웠다.

초기 국가, 부여는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오답 해설>

혼인 풍습으로 서옥제가 있었던 나라는 초기 국가, 고구려이다.

정사암에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한 나라는 백제이다(정사암 회의, 천정대와 호암사지에서 열림).

​④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한 나라는 변한[가야]이다.

특산물로 단궁, 과하마, 반어피가 유명하였던 나라는 초기 국가, 동예이다.

정답>

 주어진 '()'는 고구려의 제17대 왕인 소수림왕(재위 371-384)임을 알 수 있다(불교 수용은 재위 2년인 372).

소수림왕은 재위 2년인 372년에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참고로 재위 3년인 373년에는 율령을 반포하였다.

오답 해설>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 고구려의 왕은 장수왕(재위 413-491, 20)이다(427, 장수왕 15).

(압록강 하류 지역인) 서안평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한 고구려의 왕은 미천왕(재위 300-331, 15)이다(311, 미천왕 12).

​④ 연가(延嘉)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고구려의 왕은 장수왕으로 추정된다(479, 장수왕 67). 안원왕 대(재위 531-545, 23)의 연호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539, 안원왕 9).

신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왜를 격퇴한 고구려의 왕은 광개토 대왕(재위 391-413, 19)이다[400, 광개토 대왕(영락) 10].

소수림왕 4 국가조직정비 불교372(전진-순도)
율령372 태학372(국립대학) 소태율불372

정답>

  밑줄 그은 '이 지역''사비' 즉 지금의 충남 부여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538, 백제 성왕 16). 위덕왕은 백제의 제27대 왕(재위 554-598)으로,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백제 성왕의 아들이다. 참고로 2015년에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에 분포하는 삼국 시대 백제 역사 유적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리기(舍利器):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인 사리(舍利)를 모셔놓은 그릇이다. 사리병이나 사리함, 사리호 등의 용기를 가리킨다.

관촉사 석조[은진] 미륵보살 입상이 있는 곳은 충남 논산이다(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오답 해설>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이다(7세기). 국보 제9호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의 대표적인 탑으로 꼽히고 있다.

능산리 고분군은 충남 부여에 위치한 백제 후기의 고분들이다(사적 제14). 2021917일자로 능산리 고분군에서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④ (사비의 왕궁지인) 관북리 유적 역시 충남 부여에 위치한다(사적 제428).

(사비의 산성인) 부소산성 역시 충남 부여에 위치한다(사적 제5).

성왕 6 538사비천도남부여일본(노리사치계,불교)
55방지방제도정비22부중앙관제 성사남노5522
진흥왕배신으로나제동맹결렬, 관산성에서 전사

정답>

()'왕은 당과 신라 군사들이 이미 백강과 탄현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군 계백에게 결사대 5천 명을 거느리고 황산으로 가서 신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다. 계백은 4번 싸워서 모두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서 마침내 패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백제 계백 장군(?~660)이 신라군과 싸운 황산벌 전투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660.7).

()에는 '사찬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설인귀(613~683)와 싸웠는데 연이어 패하였다. 그러나 이후 크고 작은 22번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4천여 명을 죽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신라군이 당의 설인귀와 싸운 기벌포 전투[해전]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676.11).

검모잠(?~670)이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고 [황해도 한성(지금의 재령)에서] 부흥 운동을 전개한 것은 670년의 일이다(고구려 부흥 운동). 참고로 검모잠은 당의 정벌대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안승에게 피살되었다.

*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과 나당전쟁

멸망 부흥 식민관청 나당전쟁 소마매기
백제
660
,
수신
치상치
5도독부(웅진도독)
소부리주
소부리주마진적성매소성기벌포신라승리(당군이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이전)삼국통일
한계-1.영토축소(~)
2.외세개입
의의-1.첫통일,
2.당축출(자주성),
3.국가경제력향상

668

모잠
연무
연수
9도독부
(안동도호-설인귀)
신라
676
  계림도독부(문무왕)

*당과동맹(648)X(660)계림도독부,웅진도독부설치(663)고구려X(668)안동도호부설치(669)나당전쟁(671)매소성쌈(675)기벌포해전(676)

 

오답 해설>

김흠돌(?~681)이 반란을 꾀하다 처형된 것은 (통일) 신라 신문왕 원년인 681년의 일이다.

(백제)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함락시킨 것은 재위 2년인 642년의 일이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크게 물리친 것은 고구려 영양왕 23년인 612년의 일이다(수의 2차 침입 시).

​④ 대조영(재위 698-719, 고왕)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건국한 것은 698년의 일이다(발해 고왕 원년).

정답>

'하늘에 길을 묻다 천문(天文)*'이라는 제목 아래 '우리 선조들은 하늘의 움직임이 세상의 이치와 연결된다고 생각해 천문 현상을 면밀히 관측하였습니다. 덕흥리 고분의 별자리 벽화는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줍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제시된 자료에는 고구려 고분인 '오회분'과 경주의 '첨성대'도 나와 있다. 따라서 천문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천문(天文):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으로, 천문학의 준말이기도 하다. 우주와 천체의 온갖 현상과 그에 내재된 법칙성 따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데 사용하던 재래식 기계이다.

오답 해설>

(양산 통도사) 금동 천문도는 조선 효종 대에 만들어진 천문 기구이다(1652, 효종 3). 즉 천문 관측을 위해 별자리를 동제 원판에 정교하게 새긴 천문도이다(보물 제1373).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이다(천문시계). 혼의, 혼의기, 선기옥형이라고도 한다.

​④ 칠정산 내편은 이순지와 김당 등이 편찬에 참여한 역법서이다(1444, 세종 26). 한양을 기준으로 역법을 교정한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서이자 원의 수시력에 대한 해설서이기도 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대에 만들어진 돌에 새긴 천문도이다(1395, 태조 4).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조선의 하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국보 제228).

정답>

'홀로그램으로 만나는 역사 인물'이라는 제목 아래 왼쪽 ()의 말풍선에 '당에 유학하고 돌아와 영주에 부석사를 세우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습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통일) 신라 시대의 고승, 원묘국사 의상(625~702)임을 알 수 있다(부석사를 세운 것은 문무왕 16년인 676). 이어 오른쪽 ()의 말풍선에는 '무애가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지요'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 역시 (통일) 신라 시대의 고승, 화쟁국사 원효(617~680)임을 알 수 있다.

의상은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하였다(668, 문무왕 8).

 

* 원효에 대하여

1. 원효+요석공주=설총(화왕계, 신문왕때 유교적도덕정치강조)

2. 종개창

3. 금강삼매경(), 대승기신론(), 화엄경()

4. 십문화쟁론:물과얼음 근원같다. 인간평등, 나무아미타불,

민중을 중심으로 화합주장

5.정토교보급(창시X),불교대중화(점찰법회,관음신앙,밀교)

6. 화쟁사상= 대승기신론소+십문화쟁론각 경전의 불교사상 을 한단계 높은차원에서 하나의 원리로 통합

7. 일심사상으로 다른종파와의 대립극복에 노력함

8. 정토신앙=내세신앙(현세),평등, 전불교적현상, 통일 전 이미 발생, 국왕부터 폭넓게 수용

염불만으로 극락갈 수 있다.

9. 고려시대에 화정국사로 추앙 10. 무애가

 

오답 해설>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백련 결사를 이끈 인물은 고려의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이다.

불교 교단을 통합하기 위해 천태종을 개창한 인물은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다(1097, 숙종 2).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구법순례기인)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인물은 (통일) 신라의 고승, 혜초(704~787)이다(727, 성덕왕 26).

심성 도야를 강조한 유불 일치설을 주장한 인물은 고려의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다.

정답>

중원경, 서원경, 남원경, 북원경, 금관경 '5소경'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지방 행정 구역을 (9) 5소경으로 정비한 국가는 (통일) 신라이다(685, 신문왕 5).

 

. 9서당 10정의 군사 조직을 운영하였다[687(신문왕 7)/685(신문왕 5)]. 옳은 설명이다.

. (지방의 여러 성에) 욕살, 처려근지 등을 지방관(지방 장관)으로 파견한 국가는 고구려이다.

.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다. 옳은 설명이다. 상수리 제도는 신라의 중앙 정부가 지방 세력을 통제[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지방 세력의 자제들 중 한 명을 일종의 볼모로 중앙에 머물게 한 제도이다(5세기 이전부터 실시 추정). 고려의 기인 제도, 조선의 경저리 제도로 이어졌다.

. (동계와) 북계에 병마사를 파견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한 국가는 고려이다.

 

이상에서 옳은 설명은, ''이다.

 

정답>

'이것은 당, 일본, 신라 등과 교역한 ()의 주요 교통로를 도식화한 자료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제시된 그림에는 ()를 중심으로 거란과는 '거란도'가 당과는 '영주도''조공도', 신라와는 '신라도', 일본과는 '일본도'가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발해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발해의 용두산 고분군에 있는 정효 공주 묘는 고구려와 당의 양식이 혼합된 벽돌무덤이다.

오답 해설>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중시한 국가는 고려이다(921, 태조 4).

후연을 격파하고 백제를 공격한 국가는 고구려(광개토 대왕)이다(백제를 공격한 것은 주로 390년대, 특히 396년이 대표적이고, 후연을 격파한 것은 주로 400년대의 일).

지방에 22담로를 두어 왕족을 파견한 국가는 백제(무령왕)이다(6세기 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국가는 (통일) 신라이다[828(흥덕왕 3)~851(문성왕 13)].

정답>

'지도와 같이 13곳의 조창에 조세를 모았다가 개경의 경창 등으로 조운하였던 시기의 경제 상황을 말해 볼까요?'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주어진 지도에는 13곳의 조창이 명칭과 함께 표시되어 있다. '개경의 경창' 등이 제시된 것으로 보아 이는 고려 시대의 조운로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오답 해설>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한 것은 신문왕 대의 일이다[687(신문왕 7)/689(신문왕 9)].

덕대가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고구마, 감자 등의 구황 작물을 재배한 것 역시 조선 후기의 일이다.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한 것은 조선 세종 25년인 1443년의 일이다. 계해약조는 조선이 쓰시마 도주와 맺은 세견선 등 무역에 관한 조약으로, 1426(세종 8)에 있었던 3포의 개항을 비롯한 무역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정식으로 맺은 조약이다.

정답>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로 떠나요!'라는 제목 아래 '고인돌', '참성단', '광성보'가 사진과 함께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강화도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강화도에는 고려 제23대 왕인 고종(재위 1213~1259)의 능인 홍릉이 있다(사적 제224).

오답 해설>

김만덕(1739~1812)이 빈민 구제 활동을 펼친 곳은 제주도이다.

정약전(1758~1816)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은 흑산도(지금의 전남 신안군에 따린 섬)이다(1814, 조선 순조 14)

지증왕이 이사부(?~?)를 보내 복속한 지역과 부속 도서는 울릉도와 독도(이상 우산국)이다(512, 신라 지증왕 13).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하여 영국군이 점령한 장소는 거문도이다(1885.4~1887.2).

 

정답>

 주어진 '()'는 후고구려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후고구려는 (최고 중앙 관서인) 광평성 등의 정치 기구를 두었다(904).

 

후고(송악)마진(철원,)태봉(덕만세)
무성수정
태봉-광평성(국정최고기구), 9관등

 

 

오답 해설>

각간 대공(大恭)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통일) 신라 혜공왕 4년인 768년의 일이다(삼국사기). 일길찬(一吉飡)의 관등에 있던 대공(?~768)과 그의 아우 아찬(阿飡) 대렴이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96각간(角干)이 왕궁파(친왕파)와 김대공파(반왕파)로 나뉘어 왕권을 놓고 싸운 이른바 '96각간의 난'이 이어졌다. 참고로 각간(角干)은 본래 신라의 최고 관등인 이벌찬(伊伐飡)을 지칭하는 용어이므로 96각간은 각간의 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이 난을 일으킨 귀족과 진압한 귀족 전체를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한 국가는 후백제이다.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군과 싸워 승리한 국가는 고려이다(930). 고창은 지금의 경북 안동 지역이다.

515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춘 국가는 발해이다(발해 선왕 대인 9세기 전반).

정답>

()'양규가 무로대에서 거란군을 습격하여 2천여 명을 죽이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3천여 명을 되찾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거란의 제2차 침입 시의 일이다(1010, 현종 원년).

()에는 '거란이 장차 침입하려 하므로 군사 30만 명을 선발하여 광군이라 부르고 광군사를 설치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정종 2년인 947년의 일이다.

()에는 '왕이 소손녕의 봉산군 공격 소식을 듣고 서희를 보내 화의를 요청하니 소손녕이 침공을 중지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거란의 제1차 침입 시의 일이다(993, 성종 12).

()에는 '강감찬 등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맞아 싸웠다. 고려군이 맹렬하게 공겨하니 거란군이 북으로 도망쳤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거란의 제3차 침입 시에 있었던 귀주 대첩을 가리킨다(1019, 현종 10).

10~
11C
거란 광군사 1차서희(강동6) 2차양규 3차강감찬(귀주)
침입영향 : 나성축조, 천리장성, 7대실록편찬(현종),초조대장경조판, 고송거의세력균형

이상을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가 된다.

정답>

'사건 일지'라는 제목 아래 210일에 '망이 등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가야사를 습격함'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311일에 '망이 등이 흥경원에 불을 지르고 승려 10여 명을 죽임', 623일에 '망이가 사람을 보내 항복을 청함', 마지막으로 720일에 '망이·망소이 등을 체포하여 청주 감옥에 가둠'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사건은 고려 명종 6년인 1176년에 일어난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의 난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공주 명학소의 난).

고려 시대에 특수 행정 구역으로 향··부곡이 있었으며, 여기에 거주한 주민들은 주민들은 차별을 받았다.

 

*ㅡ고려후기 사회의 동요

1. 무신난(1170)김보당의난(최초-문인),조위총의난(최대-무인,최충헌)공주명학소(1176,충순현으로승격, 망이망소이난, 일반농민반란+천민신분해당)전주관노의난김사미,효심의난최충헌집권(1196~1219)만적의난(1198,최초노비반란,개경)진주노비의난신라부흥운동(동경의난)고구려부흥운동(최광수의난,서경)백제부흥운동(이연년의난,남양)

*신라부흥운동-동경의난, 이비, 효심, 김사미, 패좌

 

오답 해설>

서얼이 (청요직) 통청 운동을 전개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결국 철종 2년인 1851년에 신해허통이 이루어져 서얼들의 관직 진출을 제한하는 법적 규제는 철폐되었다.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지금의 경북 상주)에서 봉기한 것은 (통일) 신라 진성 여왕 3년인 889년의 일이다

적장자 위주의 상속 제도가 확립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던 것은 초기 국가, 동예이다.

정답>

'우리 태조께서 흑창을 두어 가난한 백성에게 진대(賑貸)하게 하셨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지금 백성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저축한 바는 늘어나지 않았으니, () 1만 석을 더하고 이름을 의창(義倉)으로 고친다. 또한 모든 주와 부에도 각각 의창을 설치하도록 하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흑창을 확대하여 의창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 성종 5년인 986년의 일이다.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한 것은 고려 성종 2년인 983년의 일이다.

<성종업적>










문신월과법








평창











서원




































권농정책

노비환천법 방관파견
12






 

오답 해설>

한양이 (양주목에서) 남경으로 승격된 것은 고려 문종 21년인 1067년의 일이다(유수관을 둠).

국자감에 서적포를 설치한 것은 고려 숙종 5년인 1101년의 일이다.

인사 행정을 담당하던 정방이 (최종적으로) 폐지된 것은 고려 창왕 즉위년인 1388년의 일이다. 사실 정방은 충선왕과 충목왕, 공민왕 때도 폐지되었다가 다시 설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참고로 정방이 무신 집권자인 최우에 의해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 고종 12년인 1225년의 일이다.

개경에 귀법사를 세우고 균여(923~973)를 주지로 삼은 것은 고려 광종 14년인 963년의 일이다.

 

정답>

'○○박물관 실감 콘텐츠 구성안'이라는 제목 아래 대상 유물 특징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이라는 점과 '원각사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음'이라는 점이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이어 체험 내용으로 '탑을 쌓으며 각 층의 구조 파악하기''기단부에 조각된 서유기 이야기를 퀴즈로 풀기'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구성안의 소재가 될 탑은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임을 알 수 있다. 국보 제86호이다.

오답 해설>

경주 불국사 삼층 석탑, 즉 석가탑이다(751, 경덕왕 10). 국보 제21호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조성한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보여준다. 도굴로 손상된 탑을 보수하던 중 내부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이다(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 국보 제35호이다. 이중 기단과 탑신 사이에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하였다. 중앙에 인물상이 있으나 탑신 덮개돌의 아랫면에는 닿아 있지 않다. 네 마리의 사자는 암수로 각각 두 마리씩 표현하였으며 모습도 제각각 다르다.

양양 진전사지 삼층 석탑이다(8세기 후반 추정). 국보 제122호이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이다. 송의 영향을 받은 고려의 (다각다층형) 석탑으로, 국보 제48-1호로 지정되었다.

 

정답>

'그리운 벗에게. 연경에 도착해 이제야 소식을 전하네. 예전에 충선왕이 원의 화가를 불러 그리게 한 나의 초상을 기억하는가?‘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잃어버렸던 그 그림을 오늘 찾았다네. 그림을 보니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함께 공부하던 나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네. 혼탁한 세상 편치만은 않지만 곧 개경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네. 영원한 벗, 익재'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밑줄 그은 ''는 고려의 문신 익재[역옹] 이제현(1287~1367)임을 알 수 있다.

이제현은 (편년체) 역사서인 사략을 저술하였다(1357, 고려 공민왕 6).

오답 해설>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불교의 교리를 비판한)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한 인물은 삼봉 정도전(1342~1398)이다(1394, 조선 태조 3).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에 힘쓴 인물은 고려의 문신 최충(984~1068)이다(1055, 고려 문종 9).

(고려 명종에게)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한 인물은 최충헌(1149~1219)이다(1196, 고려 명종 26).

(경북 안동 예안에서) 예안 향약을 시행하여 향촌 교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은 퇴계 이황(1501~1570)이다(1556, 조선 명종 11).

정답>

1/3'1380년 삼도 도순찰사 ()/가 이끄는 고려군이 전라도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하였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2/3에는 '조선 선조 떄 이를 기념하여 대첩비를 세웠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파괴하여 파편만 남게 되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3/3에는 '그러나 탁본이 남아 있어 적장 아지발도를 죽인 ()의 활약상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1335~1408)임을 알 수 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위화도 회군, 1388(고려 우왕 14)].

태조
이성계
3대정책-사대교린, 억불숭유, 농본정책
도평의사사중심(의정부X) but의흥삼군부(군기능담당)
정도전(경고불조심)
경제문감,고려국사,불씨잡변,조선경국전,심기이편
향소부곡제도상 폐지
 

오답 해설>

북방에 4군과 6진을 설치한 인물은 조선 세종이다[4(1433, 조선 세종 15)/6(1434, 조선 세종 16)]. 4군은 최윤덕(1376~1445), 6진은 김종서(1383~1453)에 의해 개척하였는데, 완성하기까지 대략 10여 년이 걸렸다.

(고려의) 의종 복위를 도모하여 군사를 일으킨 인물은 동북면병마사 김보당(?~1173)이다[김보당의 난(1173, 고려 명종 3)].

여진을 정벌한 후 동북 9성을 축조한 인물은 윤관(?~1111)이다(1107, 고려 예종 2).

·우별초와 신의군으로 삼별초를 조직한 인물은 최항(?~1257)이다(1254, 고종 41). 부친인 최우 때(집권 1219-1249)1232(고종 19)에 좌별초와 우별초가 만들어졌으며, 최항 때(집권 1249-1257)에 만들어진 신의군이 합쳐져 조직되었다(삼별초, 1232~1273).

정답>

왼쪽 말풍선에 '며칠 전 전하께서 과전을 혁파하고 직전을 설치하라는 명을 내리셨다고 하네'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이제 현직 관원들만 수조권을 지급받게 되겠군'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대화는 조선 세조 12년인 1466년에 단행된 직전법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조는 원년인 1455년에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였다(태종 14년인 1414년에 처음 시행).

세조
업적
사육신(성이박하유유-성삼문,이개,박팽년,하위지,
유성원,유응부)
*이시애의난유향소폐지중앙집권화(6조직계제실시)
*상평창부활, 과전법폐지직전법실시(현직관리에게만)
*불교장려(원각사10층석탑-라경원, 간경도감)
*팔방통보,양잠장려,호적사업+호패법실시, 을해자,을유자
*경국대전착수(호전형전완성-호형), 인지의발명-토지측량

* 토지제도와 조세법(측량법)

답험
손실법
수등
이척법
  공법X   직전
X
명종
양척동일법
(효종1653)
과전법 공법 직전법 관수관급제 녹봉제
태조 세종 세조 성종 영정법1635

*수조권폐지-전주전호제약화, *소유권-지주제강화, 지주전호제

*과전법-관리의직접수조 ,현직 1대원칙 계구수전

*직전법-현직관리자에만, 토지소유권자극

*관수관급제-국가가대신(국가토지지배권강화)관리수조권약화 모든토지에 적용된것은아님

*손실답헙법1410-국가파견관리가 수확량을 답사 후 과세결정, 공정X

*공법(세종1430)-수년간 수확고를 평균, 답험 손실법과 병행

*전분6등법(수등이척법)-연분9등법, 전분6등법(전제상정소)

연분9-상상20/상중18/상하16/~/하하4

*영정법(인조1635)-효종1653양척동일법/1결당4두씩

 

오답 해설>

임꺽정(?~1562)이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의적'으로 활약한 것은 조선 명종 대(재위 1545-1567)의 일이다. 임거정(林巨正) 또는 임거질정(林居叱正)이라고도 한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그의 앞 시대의 홍길동, 뒷시대의 장길산과 함께 임꺽정을 조선의 3대 도적으로 꼽았다.

동몽선습은 중종 때 박세무(1487~1554)가 저술한 아동용 초급 교재이다(1543, 중종 38).

허준(1539~1615)이 동의보감 집필을 끝낸 것이 1610년이고, 내의원에서 이를 출간한 것은 광해군 5년인 1613년의 일이다.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담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재배하기 시작한 상품 작물이다.



정답>

'이곳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창경궁은 ()/가 정희 왕후* 등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수리하여 조성한 궁궐입니다. ()/는 경국대전 완성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조선의 제9대 왕인 성종(재위 1469-1494)임을 알 수 있다.

*정희 왕후 윤씨(1418~1483): 세조의 왕비로 아들 예종이 죽은 뒤에 손자 성종을 왕위에 앉히고 대왕대비로서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음악 이론 등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이 간행된 것은 성종 24년인 1493년의 일이다.



 
 
 
 
문신월과법

 
 
 
 
평창
 
 
 



 
 
서원
 
 
 



 
 


 
 
 



 
 



 
 



 
 
권농정책
 
노비환천법 방관파견
12
자감
 
 
 
 

오답 해설>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된 것은 영조 재위 18년인 1742년의 일이다(성균관 앞 반수교 옆).

상평통보가 주조된 것은 숙종 4년인 1678년의 일이다(전국으로 유통).

훈련도감이 설치된 것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선조 26)의 일이다.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되었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초계문신제가 시행된 것은 정조 5년인 1781년의 일이다.

정답>

위의 자료에 '중앙에서는 홍문관·육경대간, 지방에서는 감사와 수령이 천거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시험을 치르면 많은 인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한()에서 시행한 현량과의 뜻을 이른 것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정암 조광조(1482~1519)가 중종에게 건의한 현량과 시행과 관련된 사료임을 알 수 있다(1519, 중종 14).

*육경(六卿): 6조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수장(首長)인 판서(判書)를 가리킨다.

아래의 자료에는 '정국공신은 이미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허위가 많았습니다. 공신 기록을 유자광이 홀로 맡아서 이렇게까지 외람되었습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개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것 역시 정암 조광조가 중종에게 건의한 위훈(僞勳) 삭제 주장과 관련된 사료임을 알 수 있다(1519, 중종 14).

 

위 두 사료에 나온 주장이 공통으로 제기된 시기는 중종 14년인 1519년이다. 기묘사화가 일어난 해로, 연표에서는 () 시기에 해당한다.

* 4대사화(무갑기을-조윤위왕)

1.15(훈구) VS 16(사림)-사림파가 피해 but 진출계기

오사화 연산1498 의제문, 사초문제
자사화 연산1504 씨폐출사건
중종반정
묘사화 중종1519 훈삭제,모반음모의모락-조광조Kill
사사화 명종1545 위계승문제
정미사화 1547 윤원형 VS 윤원로형제권력다툼(괴벽서사건)
신임사화 1721 영조즉위전 노론4대신 처형(소론득세)

2. 조광조의 개혁정치

현량과실시 위훈삭탈 균전제(토지소유조정),한전제

불교,도교금지(승과제도X,소격서X)

유향소철폐, 향약전국적시행향촌자치강화, 사마소설치

이조병조의 전랑에게 인사권 처리와 낭천권을 가지게 함

언문청, 한글보급, 소학실시, 주자가례, 철인군주론

 

정답>

'이 그림은 중종 때 그려진 미원계회도(薇垣契會圖)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1540, 조선 중종 35). 이어 '미원은 ()의 별칭으로 (국왕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담당한 관청이었습니다. 소나무 아래에는 계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하단에는 참석자들의 관직, 성명, 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조선의 3사 중 하나인 사간원임을 알 수 있다.

사간원은 사헌부, 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렸다.

 

3:문관(왕자문)+헌부(감찰/탄핵)+간원(간쟁)

승정원(왕명출납), 성부(수도행정)

포도청, 의금부(순마소후신), 춘추과(역사편찬),

 

오답 해설>

(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의 출납을 관장한 기구는 승정원이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기구는 한성부이다.

실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기구는 춘추관이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을 범한 중죄인을 다스린 기구는 의금부이다.

 

3:문관(왕자문)+헌부(감찰/탄핵)+간원(간쟁)

정답>

'조헌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고하노라. 영남에서는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그 기세가 산악을 진동하고 있다. 이 격문을 읽은 자들은 각자의 심력을 다하여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지혜를 가진 자는 계책을 내고, 용력을 가진 자는 역량을 발휘하라! 재산을 가진 자는 군량을 바치고, 힘을 가진 자는 대열에 참여하라! 만일 왜적을 치는 데 협력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전란이 끝나는 날 그 죄를 성토하여 중형에 처하리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조헌''곽재우'라는 이름이 나온 것으로 보아 밑줄 그은 '이 전란'은 임진왜란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1592~1598).

포로 송환을 위하여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을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일본에 파견한 것은 조선 선조 37년인 1604년의 일이다.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1616)를 만나 강화를 맺고 이듬해에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인 3,000여 명을 인솔하여 귀국하였다. 참고로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자 1607(선조 40) 정사(正使) 여우길 일행이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일본에 파견된 적이 있다(이후에도 통신사로 명칭이 바뀌기 전에 두 차례 더 파견).

오답 해설>

나세, 심덕부 등이 (전라도) 진포에서 왜구를 격퇴한 것은 고려 우왕 6년인 1380년의 일이다(진포 대첩).

신숙주가 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저술한 것은 조선 성종 2년인 1471년의 일이다.

조선 정부의 통제에 반발하여 삼포왜란이 일어난 것은 조선 중종 5년인 1510년의 일이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 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된 것도 조선 중종 5년인 1510년의 일이다.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화되었다(1555, 명종 10).

정답>

'이곳은 수원 화성 성역과 연계하여 축조된 축만제입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는 축만제* 등의 수리 시설 축조와 둔전 경영을 통해 수원 화성의 수리, 장용영의 유지, 백성의 진휼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였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재위 1776-1800)임을 알 수 있다.

*축만제(祝萬提):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있는, 조선 후기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축조한 저수지이다(1799, 정조 23).

정조 15년인 1791년에 신해통공이 시행되어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이 폐지되었다.























오답 해설>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가 주조된 것은 고려 성종 15년인 996년의 일이다(최초의 철전).

시장을 감독하는 동시전이 설치된 것은 신라 지증왕 10년인 509년의 일이다.

울산항, 당항성이 무역항으로 번성한 것은 (통일) 신라 시대의 일이다.

군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균역법이 제정된 것은 조선 영조 26년인 1750년의 일이다.

 

정답>

조사 보고서의 주제로 '조선의 교육 기관 ()/를 찾아서'가 제시되어 있다. 이어 개관으로 '중종 38(1543) 풍기 군수 주세붕이 처음 건립하였다. 국왕으로부터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받기도 하였다. 흥선 대원군에 의해 정리되어 47곳이 남았는데, 이 중 대표적인 9곳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2019)'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주요 건물 배치도에는 '사당, 강당, 서재, 동재'가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는 서원임을 알 수 있다.

서원은 선현의 제사와 유학 교육을 담당하였다.

오답 해설>

전국의 모든 군현에 하나씩 설치된 교육 기관은 조선의 향교이다.

전문 강좌인 7재가 설치되어 운영된 교육 기관은 고려의 국자감이다.

중앙에서 교수나 훈도를 교관으로 파견한 교육 기관은 조선의 향교이다.

소과에 합격한 생원, 진사에게 입학 자격이 부여된 교육 기관은 조선의 성균관이다.